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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붉은 장미

by Yeonli 2019. 6. 2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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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

해바라기 같은 여성에게 향해지는, 달콤하고, 상냥함으로 가득 찬 미소.

열이 깃든, 새벽녘 전의 하늘 같은 짙은 청색의 눈동자. 호를 그리는 얇은 입술. 매우 자연스럽게 느슨해지는 뺨.

강한 충격을 받아,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가만히 서있었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던 것도 있다.

그 사람이 이런 식으로 웃는 것을 , 나는 계속, 몰랐다.

아름다웠다.

정말로, 아름다웠다.

나는 번개에 맞은 것처럼 정지하고,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 순간, 내 눈은 그를 보기 위해 있고, 모든 감각은 그를 느끼기 위해 있었다.

가슴 안쪽에서 강한 감정이 폭발해, 격류가 되어 목을 치밀어 올라, 열로 눈을 구웠다.

―――이게, 사랑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해했다.

사람을 사랑하다는게 어떤 것인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본질적인 부분을.

동시에 또 하나, 단순한 호의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던 감정이, 완전히 별개의 것인걸 깨달아 버렸다.

―――나는, 그 사람을….

알아 버리고, 깨달아 버려서, 격렬한 후회에 습격당했다.

난 동정으로 거두어진 여자였다.

분에 넘치는 마음을 품으면 안 됐다.

두 사람의 관계를 받아 들이고, 장식의 아내인 채 조용히 살아가려면 , 저 사람에게 불필요한 감정을 품지 않는 것이 제일이었다.

그런데, 알아버린 탓으로, 깨달아 버린 탓에, 저는 고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결코 손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감정을 죽이고 살아가는 인생을 걷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슬픔이 마음을 채웠을 때, 따뜻한 무언가가 쏟아진다.

「어째서…」

마음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것 같다.

아프고, 안타깝고, 괴로웠다.

닦아도 닦아도 멈추지 않고, 시야가 희미해지고, 이윽고 그 사람의 미소도 않보이게 되어 버렸다.

모든 것에게서 도망치고 싶어져서, 나는 어둠 속을 달렸다.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아프도 계속 달렸다.

가능하다면 영혼채, 지금당장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푸른 하얀 빛에 비추어진 무대 위에서 , 피로 물든 의상을 입은 가희가 미소짓고 있다.

그녀는 기쁨과 슬픔을 훌륭할 정도로 표현하는 광기적인 선율에 맞추고, 죽음을 증명하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었다.

씁쓸한 눈물을 쏟아주세요. 제가 남긴 베일 위에서.

그 때 나는 천상에서,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올라올 때, 겨우 하늘은 저의 낙원이 되겠지요.

아아, 분명! (※)

합창에 의한 한탄의 노래가 땅울림처럼 울리는 가운데, 가희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연주는 히로인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최고조로 부풀어 올라, 쓰러진 가희는 목사와 시녀를 연기하는 가수에게 안겨, 무대 안쪽에 질질 끌려 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햐얀 목에서, 단말마 같은 고음을 내뿜었다.

아아!

슬픔으로 가득 찬, 듣는 사람의 가슴을 쥐어뜯는듯한 목소리였다.

연주가 끝나자 수많은 박수가 울려 퍼지고, 『광란의 장소』를 훌륭하게 노래한 가희를 칭찬하는 목소리가, 사방팔방에서 날아온다.

그 사이에도 연기는 계속되고, 가희는 사용인에게 안겨진 채로, 마치 하늘에 떠오르는 듯이 무대 중앙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그 후에도 이야기는 진행되어, 히로인의 죽음을 알게된 주인공이 자해해, 비극의 막은 끝난다.

난 다른 관객들과 같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면서, 문득 가슴을 스쳐지나간 감정에, 작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부럽다.

연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광란하고, 사람들에게 그 생각의 강함을 알리고 죽은 아름다운 히로인.

나도 그녀와 같이 광란해서, 물불 가리지 않고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외치며, 환영을 끌어안고, 그대로 죽어 버리고 싶다.

그러면 많은 사람에게 동정되 , 그 사람의 기억 안에도 강한 인상을 남기고 머무는게 가능하다.

오명도 쏟아지겠지.

적어도, 살아서 선행을 이루는 것보다는, 훨씬.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지만…」

하나 더, 방금 전보다 큰 한숨을 떨어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관람석에서 나온다.

다른 방에서 잇달아 나오는 신사 숙녀에 부딪치지 않도록, 또, 아는 사람이 말 걸리지 않도록 빠른 걸음으로 걷고, 1층 입구로 이어지는 큰 계단을 내려갔다.

극장의 홀은 눈을 동그랗게 뜰정도로 거대하다.

전체적으로 흰색과 돈으로 통일되어 있어서, 천장에는 수정의 샹들리에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고, 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밝다.

외형의 화려함도 돈이 드는 정도도 , 빈번하게 야회가 열리는 대귀족의 저택의 현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차려입은 남녀가 각자 말하고 있고, 향수의 냄새와 열기가 가득차서, 답답했다.

나는 계단의 중간에 멈춰서서, 큰 꽃병에 꽂힌 꽃들 그늘에 숨어, 심호흡을 반복했다.

「…괜찮아」

그렇게 자신을 타이르고 굳어진 얼굴에 미소를 짓고, 부채를 들고, 느긋한 발걸음으로 인파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나를 눈치챈 영애들이 귀여운 얼굴로 노골적인 호기심을 띠고, 펼쳤진 부채 뒤에서 속삭이고 있었다.

「저것봐요. 로젠슈타인 백작 부인이야」

「저분이, 소문의?」

속삭임은 악의로 가득 차 있었다.

저는 한층 더 속도를 늦추고, 영애들의 앞을 천천히 지나간다.

「네, 맞아요. 그 로젠슈타인 백작 부인이야. 어머나, 오늘은 애인도 데리지 않고 혼자네. 본격적으로 미움받아 버린 거려나?」

「애인? 저 분에게는 애인이 있는 거야? 보기에는 우리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나이인 것 같은데」

「 확실히 올해로 18이에요. 결혼 직후라, 아직 일 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애인을 만든거야. 아이를 한명도 낳지 않는데」

지나가던 급사에게서 마실 것을 받아, 목을 적시는 척하며 멈춰 선다.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도 영애들의, 소근소근 이야기치고는 약간 큰 목소리는 들리고 있었다.

「마아, 그건 역시 좋지 않은게?」

「않좋아요. 비상식적인걸요. 로젠슈타인경도 상당히 화난 것 같아. 그치만 저 사람, 전혀 반성하지 않고 아직 교제하고 있어. 교제하고 있다고 할까, 따라다니고 있다고 할까, 데리고 다니고 있다는게 옳을까. 그 애인, 로젠슈타인 백작 부인이 일방적으로 열을 올리고 있을 뿐이고, 애인은 마지못해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소문이야」

「그런데 잘도 이혼하지 않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바로 친가로 돌려보래 버리면 좋을텐데. 저 사람의 집은 상당한 시골에 있는 것 같으니까, 이렇게 멋대로 사교계에 간섭해오는 일도 없어지겠지. 분명 로젠슈타인경은 체면을 신경쓰고 있는거야. 이혼한다고 해도 일 년은 너무 짧은걸. 적어도 3, 4년이 지나고 나서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거기까지 들으면 충분했다. 나는 영애들에게 도발하는 듯한 미소를 짖고, 그녀들이 「마아!」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듣고 나서 그 자리를 뒤로 한다.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 우연히 지나가던 급사에게 잔을 돌려주고 있자, 다른 장소에서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화도 없는 만큼 부부 사이가 차가워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로젠슈타인경도 결론지은 듯, 애인을 만든 매정한 아내보다 같은 집에 사는 눈이 안보이는 사촌 여동생에게 애정을 쏟고 있는 것 같아」

「언제쯤 되면 이혼하는거려나? 만약 헤어지면 저의 조카를 소개하고 싶은데. 조카는 계속 로젠슈타인 백작을 동경하고 있어서. 저분에 비하면 훨씬 매력적이고, 귀여운 딸이에요」

「아아 보여서 심하게 낭비하는것 같아. 보석이나 드레스를 사고, 도박장에도 빈번하게 드나들고 있다. 애인에게 보내고 있는 돈도 상당한 금액이라던가」

「원래는 몰락한 후작 가문의 딸아라네요. 자산가에 시집가게 되서 애지중이되니까, 신이나서 하고 싶은대로 하는거야. 정말, 오르페우스님이 가여워서 어쩔 수 없어」

물론,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비판만 당해서는 사교계에 있을 수 없다. 친한 듯이 말을 걸어 오는 귀족도 많다.

「이거 이거, 로젠슈타인 백작 부인. 오늘도 아름다우시군. 마치 여신 같다」

「하얀 피부에 푸른 드레스가 잘 돋보입니다. 이것도 샤름・몬트에서 만들었나요? 저도 따라하고 싶지만, 오필리아님과 같이 잘 소화해 낼 수 없어. 몸의 두께가 다른걸」

「진주의 머리장식도 어울리셔요. 그건 그렇고 , 요염한 흑발이 아름답네요. 신비롭네요」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개미처럼 모여들어서, 마음이 담기지 않은 겉치레로 비위를 맞출려고 한다.

이렇게 아첨해두고, 여차할 때, 나를 통해서 편의를 도모할 생각이겠지.

그런 그들을, 불쌍하게,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그 사람과의 관계는 얼어붙었다.

편의를 봐주려고 해도, 그 사람이 내 말을 들어 줄 리가 없는데, 그들은 그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적당히 맞장구를 치면서, 이야기가 끊기는 것을 보고 말한다.

「미안해요. 저, 조금 지쳐서요. 이야기의 다음은 다시 다음에 해주세요」

계속 보고 싶었던 가극은 보았다.

그러는 김에, 나에 대한 세간의 비난의 정도도 알 수 있었다.

이제 여기에 볼일은 없다.

평안하세요, 하고 차갑게 말하고 모이는 사람들의 사이를 지나, 현관으로 향했다.

밖은 매우 조용했다.

밤 특유의 냄새가 나고, 향수의 냄새로 기분이 나빠지고 있던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얼굴을 들고 하늘을 본다.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에는, 잘라낸 듯한 초승달이 떠 있었다.

그 형태는 호를 그리는 입술을 닮아서, 극장에 있던 사람들처럼,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웃고 싶다면, 웃으면 된다」

세상의 사람들은 떠들고 있다. 로젠슈타인 백작 부부의 사이가 차가워지고 있다, 라고.

그 원인은 아내 쪽에 있고, 그녀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남편을 싫어하고 있어서, 결혼 후 1년 안돼서 애인을 만들거나, 낭비를 반복하거나, 남편인 백작의 충고를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있다, 라고도.

소문은 사실이지만, 하나만, 다른 점이 있다.

로젠슈타인 백작 부인은 남편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녀는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어떤 것보다도 사랑하고 있다.

어리석은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건 남편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을 희생할 생각이다. 

「맘껏 웃으면 된다. 욕하면 된다」

광란하며 울부짖는 것이 아니라, 이런 형태로 밖에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증명할 수 없는 나를.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희생하려고 하고 있는 바보 같은 여자를.

마차를 타고, 그때까지 짖고 있던 미소를 지운다.

비극적인 이야기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는지, 아니면, 자업자득일 수 밖에 없는 비판에 드물게 마음이 흔들린 것인지, 평소보다 훨씬 우울한 기분이었다.


※Gaetano Donizetti작、오페라「Lucia di Lammermoor」로부터。제5막 광란의 자리에서 부르는「Spargi d'amaro pianto」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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