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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붉은 장미

by Yeonli 2019. 6. 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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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정해진 날은,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그 때는, 매우 추운 날의 오후였다.

「주인님이 부르고 있다.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휘몰아치는 북풍 속에서 낙엽을 쓸고 있던 나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서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나와 같은 또래의 소년의 하인이 서 있고, 망연한 얼굴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거야ㅡㅡㅡ소년의 얼굴에는 그렇게 써 있고, 내가 대답을 하지 않고 있자 짜증이 짙어지고 있었다.

「듣고 있는 거야? 듣고 있다면 대답해라, 얼간이」

차가운 말이 꽂히면, 나는 더욱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바보, 멍청이, 도움이 되지 않는 녀석, 얼간이--- 수없이 퍼부어진 매도. 아픔에는 익숙해져도, 마음을 파헤치는 것은 변함없다. 피가 흐르고 완전히 식어버린 심장이, 얼어붙는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빗자루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딱딱한 감촉이 돌아와, 무기물조차 거절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지나도 대답하지 않는 것에 화가 치밀었는지, 소년은 「빨리가」라고 말하고 떠난다.

그의 뒤를 나뭇잎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뒤쫓는 것을 보고, 나는 또 다시 해야 한다, 하고 탄식했다.

―――아무리 청소해도 깨끗하게 되지 않는다.

어긋난 보닛을 고치고 얼굴을 들자, 거기에는 회색으로 물든 흐린 겨울의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였다.

비가 내리면 낙엽이 땅에 붙어 쓸기 어려워진다. 그 전에 정리하고 싶었지만, 주인의 명령이 최우선인 것은 얼간이인 나도 알 수 있다.

포기하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정리하고, 이 저택의 주인에게 향했다.

「느려」

서재로 들어가자마자 내던지듯이 들어버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다.

얼굴을 들자, 어두운 방의 유일한 광원인 창문을 등지고 중년의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고, 싫은걸 봐버렸던 것처럼 험악하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남자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사치로운 벨벳 윗도리와 그 밑에는 레이스 장식을 충분하게 넣은 비단의 셔츠를 입고 있었다.

바지와 부츠도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심하게 살쪄 있는 탓으로 셔츠의 가녀린 단추가 당장이라도 튕겨져 날아갈 것 같았다.

얼굴도, 젊은 시절의 미모가 거짓말처럼 둥글어져서 뺨과 턱에 이르러서는 살이 해이해지고 있다.

옛날부터 변함없는 것은 풍부한 금발만으이고, 그 날도 한가닥도 흐트러지지 않고 뒤로 넘겨져 있다.

―――귀족의 옷을 입은 돼지.

당시, 나는 이 남자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초라하고 기품의 조각도 없는 추악한 돼지, 라고.

남자의 이름은 루돌프・ 하인츠・폰・라가펠드.

거의 몰락했지만, 일단 후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며, 이 저택의 주인이다.

동시에 나의 주인이며, 아버지이기도 했다.

나는 이 남자와 창녀였던 어머니와의 사이에 생긴 아이며, 6년 전 유행병으로 어머니를 잃었기 때문에, 남자의 수중에 거두어졌다.

「이야기란 뭔가요」

검은 더러운 손을 내려다보면서 묻자, 작게 혀를 차는 소리가 돌아왔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가 하면, 아마, 나의 존재 그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이상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존재하는 것도, 꾀죄죄한 옷차림을 한 것도, 전부 이 남자의 탓인데.

「하인의 흉내는 끝이다. 내일부터 너에게 예의와 교양을 철저히 가르친다」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물었다.

남자는 싫은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너를 나의 딸로서 다뤄주마, 라는 의미다」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하는걸까,라고 생각했다.

창녀의 딸, 미천한 아이라고 욕하고, 이 집에 있고 싶으면 하인으로서 일하라고 말하고 혹사당했다.

허리를 다칠 때까지 일을 시키고, 게으르다고 트집을 잡아 굶기거나, 추운 날씨에 내던졌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

「뭐냐 그 얼굴은. 어디까지나 천한 네가 귀족의 딸로서 취급받는다고? 뭐가 맘에 안들어. 바닥에 머리를 박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불쾌하게 웃는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아래를 향한다.

천천히 무릎을 꿇고, 바닥에 손을 짚고, 납작 엎드리고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바닥은 서늘하고 차가웠다. 그 차가움에 심장이 얼어붙었다.

익숙한 것은 아픔만이 아니라, 굴욕도 그런 것을, 그 때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항은 없었다.

어설프게 거역해서 폭력을 받을 정도라면, 긍지를 버리는 것이 좋았다.

「이유를…」

「뭐냐?」

납작 엎드린채로는 알아듣기 어려웠는지, 다시 묻는다.

천천히 얼굴을 들고,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다시 말했다.

「이유를 가르쳐 주시지 않겠습니까?」

「말로 쓰니까다. 너에게는 결혼해줘야겠다」

「결혼?」

「그렇다. 기뻐해라. 상대는 귀족의 젊은 남자다. 돈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용모도 좋다. 너 같은 미천한 딸에게는 아까울 정도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연실색하면서, 왜 내가, 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남자에게는 한명 더, 올해로 16살이 되는 딸이 있었다. 금처럼 소중하게 자란 영애,진짜 공주가.

미천한 출신인 나를 처음부터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그 딸을 보내면 좋지 않은가.

「바보냐, 너 밖에 없잖아. 빅토리아는 라가펠드가의 후계자다. 남의 집에는 시집가지 않고, 사위를 들이는게 당연하잖아」

남자가 싱글거리는 웃음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을 보고 중요한 것을 떠올렸다.

이 남자는 나를 불행하게 하지 않으면 기분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어머니 대신에, 딸인 나를.

그 때문에 일부러, 고아가 된 나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오렴, 오필리아. 함께 살자』

웃는 얼굴로 손을 뻗은 주제에, 저택에 도착한 순간, 손바닥을 돌려 내동댕이친 남자.

『배신자인 어머니 대신에, 너가 벌을 받아라』

실컷 매도하고, 혹사하고, 기분이 나쁘면 폭력을 휘둘렀다.

하인들도 이 남자의 뜻을 받고, 함께 괴롭혔다. 불만의 배출구로 했다.

『행복하게 할 수 없어. 내가 고통받은 이상 고통받게 해준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남자는 없었다.

마음을 이루지 못해서, 실의한 나머지 굴절한, 불쌍하고 추악한 남자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피의 연결이 있어도, 결코 아버지가 아니었다.

「두달한다. 가정 교사를 붙여줄테니까, 완벽한 숙녀가 되어. 너에게 가치는 없다. 모친과 같은 직업에 종사하던가, 수도원에 들어가게 하지」

분명, 이 결혼도 보통 결혼이 아니다. 상대의 조건이 좋은 만큼,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다.

마음이 후벼파지지 않도록, 북받치는 감정을 분노로 바꾸었다.

이렇게 하면 심장은 얼지 않고, 슬픔도 느껴지지 않는다. 타는 듯한 충동이 있을 뿐이다.

「너 같은 사람을 무상으로 받아서, 이 저택에 두어 주었다. 입는 것도, 먹는 음식도 주었다. 너를 살려 준 거야. 그 은혜를 돌려줘」

남자가 말을 끝마치자마자, 나가라고, 손짓으로 가리켰다.

「모친과 닮은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짜증난다. 정말, 비슷하지 않았으면 귀여워해 주었을 것을」

일어서, 가볍게 인사하고 문으로 향한다.

저 남자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보지 않았다. 노려보고 있는지, 비웃는 어느 쪽일테니까, 아무래도 좋았다.

어두운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빨리 일하러 돌아가지 않으면, 여자 머리에 오니의 목을 잡은듯한 얼굴로 질책되어 버린다. 그 여자는 주인에게 불리고 있었다고 해도 듣는 귀가 없다.

―――아아, 그치만.

문득 떠올리고 발걸음을 멈춘다.

그 남자는, 하인의 흉내는 끝이라고 말했다. 실컷 혹사해놓고 흉내라고 말하는 것은 어이없지만, 그 남자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더기 옷을 입는 일도 없어지고,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낙엽이 쓸기 어려워지는 것을 신경쓸 필요도 없다.

저는 내일부터, 라가펠드가의 영애인 것이다.

외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순식간에 양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불행하게, 될까보냐」

여기는 그 남자의 저택이다. 그래서, 이 저택에 있는 동안은 어떤 명령도 따른다.

완벽한 숙녀를 목표로, 만약 되지 않으면 창녀든 수녀라도, 그 남자가 원하는 것이 되어 주지.

하지만, 이 저택을 나가면 다르다.

「나는, 불행하게 되지 않아」

나는 맹세했다.

갈라지고 까칠한 손에서는, 마른 흙의 냄새가 났다.

결혼이 명해진 그 날부터, 창고가 아닌 제대로된 방이 주어지고, 누더기 메이드복이 아니라 드레스를 입었다.

감색과 회색의 드레스는 그 남자의 딸, 빅토리아가 입고 있는 것에 비하면 현격히 수수하고, 과부 같은 모습이었지만, 때가 탄 너덜너덜한 옷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식사도 세 번 주어지고, 밤에는 따뜻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잘 수 있게 되었다.

사흘 후, 가정교사가 오고, 인사도 적당히 교양과 예의작법을 철저하게 배웠다.

경우에 따라서는 채찍을 가차 없이 휘둘러오는 엄한 가정 교사였다.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글자의 읽고 쓰기를 배운 나는, 단어의 묶음부터 공부하려고 하는 가정 교사에게 책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읽고 쓰는 것은 가능합니다. 시의 암송도 조금. 예의범절은 알고 있습니다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잊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도도 춤출 수 없고, 음악의 교양은 일절 없습니다. 그것을 전제로 지도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완벽한 숙녀가 될 정도라면, 몇 번 채찍으로 맞아도 상관없다」

만약 될 수 없으면, 내 인생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거꾸로 떨어져, 그 남자를 기쁘게 할 뿐.

그래서, 나는 필사적이었다.

필사적으로 공부해서, 예의작법과 교양을 몸에 익혀 갔다.

결혼 상대와 처음 만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후의 일이었다.

만나고 싶다고 말한 것은 결혼 상대 쪽이고, 내가 사람 앞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교양과 예의작법을 익혔기 때문에, 그 남자도 승낙한 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은, 단지 입장상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남자는 사업에 투자하기 위한 자금을 나의 결혼 상대에게 대출 받았다. 그 대신에 요구된 것이 둘 있는 딸의 어느쪽인가고, 그 남자는 망설임 없이 나를 선택했다. 인질이 되는 것은 딸 빅토리아가 아니라, 미운 여자 아이가 적당하다, 라고.

물론, 그 날의 일도―――처음으로 오르페우스를 만난 날의 일도, 결혼을 명령받았던 때 이상으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날도 확실히, 추운 날의 오후였다.

다만, 한달전과는 달리 좋은 날씨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응접실에 밝은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남자는 결혼 상대의 일을, 돈을 가지고 있을 뿐이 아니라 용모도 좋다고, 표현하고 있었지만,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로젠슈타인 백작, 오르페우스・디델리히・폰・로젠슈타인은, 검은 머리 푸른 눈에 매우 예쁜 얼굴을 가진, 어딘가 나른한 분위기가 감도는 꽃미남이다.

「만나뵉게 되어 영광입니다, 로젠슈타인 백작」

「오르페우스라고 불러 주세요. 저도 오필리아라고 부르겠습니다」

아름다운 용모에 감탄하면서 인사를 하자, 희미한 미소와 친근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했을 때, 왠지 모르게 위화감을 느꼈다.

오르페우스의 미소는 잘 보면, 눈이 전혀 웃지 않았다.

입가는 요염한 호를 그리고 있는데, 푸른 눈은 식어있었다. 그 색에 걸맞은, 얼음 같이 차갑게 나를 꿰뚫고 있었다.

호의의 한조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정반대로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그 남자는, 내가 창녀의 딸인 것은 입다물고 있으라고 했다. 그러니까 아마, 저 남자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겠지.

아마, 미움받는 원인은 그게 아니다.

인상이나, 외모인가, 아니면 양쪽 모두일까.

난 미인은 아니다.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면 몹시 비참한 기분이 되었다.

이 집의 하인들한테 미움받는 것은 상관없지만, 미래의 남편이 되면 그럴수는 없다.

이 이상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 굳은 미소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그 남자와 오르페우스가 대화하는 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 무한으로도 느껴지는 시간이 흘렀을 때, 오르페우스가 말했다.

「아가씨와 단 둘이서 이야기 해도?」

「아―…그것은 전혀 상관없습니다만…오필리아, 너는 어떻지?」

제대로 대화할 수 있는가―――그 남자는 그렇게 말하는 듯이 나를 노려본다. 솔직히, 단 둘이 되는 것은 불안했지만, 거절할 수 없다. 괜찮습니다, 라고 수긍하고, 그 남자는 옆으로 피하며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라고 귀띔하여, 응접실을 나갔다.

「엄한 아버님이다」

오르페우스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들렸나요?」라고 묻자, 「귀는 좋은 편이거든」이라고 대답한다.

「무엇보다, 아버님의 목소리는 조금 너무 컸다」

「흉한 모습을 보여서, 대단히 실례했습니다」

「신경쓸 필요 없다. 아버지는 네가 걱정되서 어쩔 수 없는거겠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웃는 얼굴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가 걱정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혼담이 망하는 것은 곤란하므로 꾹 참고, 다시 미소를 만들고 나서 얼굴을 든다.

대화 자체는 끊기지 않았다.

그의 회화술은 높아서, 묻는 것도 능숙했었다.

개인적인 질문이 많은 것은 곤란했지만, 미리 어떻게 대답할까 결정해 두었기 때문에, 무심코 말하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당신에게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잠시 대화가 끊어지자, 오르페우스는 당돌하게 말했다.

뭘까요, 자세를 바로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버님으로부터 듣었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사촌 여동생이 있다. 올해로 23이 되지만, 맹목이며 친척도 없기 때문에, 6년 전부터 나에게 맡아졌다」

물론, 듣지 못했다.

그 남자가 가르쳐 준 건 오르페우스의 용모가 우수한 것이나 자산가인 것과, 그 이외는 연령이나 궁정 직위 등, 필요 최저한의 정보 뿐이었다.

「나의 결혼이 정해졌다는 걸 이야기하자, 저택을 나간다고 말했다. 당신이 싫어할 지도 모르니까 라는 이유로. 하지만, 그녀는 6년 걸쳐 간신히, 방 안이라면 혼자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으로 옮기면 또 처음부터 다시 하지 않으면안 된다. 보호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편한 생활을 보내게 된다」

거기서 간신히, 이야기를 이해했다.

오르페우스는 제가 시집간 후에도, 그 사촌을 저택에 두고 싶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친척도 없고, 장애를 가진 사촌 여동생의 존재를 받아들여 줬으면 한다,고.

「6년 전이라고 하는건, 그 유행병과 무슨 관계가?」

조금 생각하고 그렇게 묻자, 오르페우스는 수긍했다.

「있다. 유행병으로 부모님을 잃고, 그녀 자신도 걸렸지만 목숨은 건졌다. 그러나, 시력을 잃어 버렸다. 당시 그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지만, 그 이야기도 없어져버려…」

―――그렇다면 어째서, 당신이 그 사촌 여동생과 결혼해주지 않는 건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

연애 감정은 없고, 동정으로 결혼 할 생각은 없을지도 모르고, 후원자가 없는 여성보다 명가의 영애와 결혼하고,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우선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비정한 것 같지만, 귀족의 결혼은 그런 것이라고 들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연애는 결혼 후에 즐기는 것이다.

게다가 만약, 오르페우스가 다른 여성을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나에게 이 결혼을 거부할 권리는 없다.

나는 그 남자의 도구고 명령하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거, 참 안됐군요」

대신에 말한 것은 극히 평범한 말이었지만, 절반 이상은 본심이기도 했다.

6년 전, 맹위를 떨친 유행병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내 어머니도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시력을 잃고, 약혼자에게 버림받은 오르페우스의 사촌 여동생 쪽이, 받은 슬픔과 고통은 훨씬 위일 텐데.

나는 아직 보지 못한 그녀에게 동정해, 더 이상 괴로운 일을 격게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부디, 그 분을 두어 주세요.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정말로, 상관없을까」

내가 수긍하자, 오르페우스는 시선을 풀고 「고마워」라고 말했다.

「당신처럼 상냥한 여성과 결혼할 수 있다니 , 나는 행운아다. 당신을 만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그것은 흔한 빈말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뺨이 뜨거워질 정도로 기뻤다.

처음으로 어머니 이외의 사람에게 존재를 인정받은 듯한 느낌이 들어, 기쁜 나머지 가슴이 벅찼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 때, 나는 오르페우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그 미모에 감탄했다.

하얀 얼굴은 정말로 예쁘고, 너무나도 열심히 봐서, 그리고 알고 말았다. 

차가운 시선 속에,눈동자 안에 검게 소용돌이치는 것에.

인간성을 왜곡할 정도의 고통을 겪은 사람 특유의, 울적한, 원망과도 닮은 감정에.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오르페우스가 자신과 같은 종류의 인간이라는 것을.

저와 똑같이 어두운 과거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그런가. 나만이 아닌 것인지.

이상한 충동이 올라왔다.

그리운 듯한, 껴안고 싶어지는 듯한, 그런데도, 말로 격렬히 부정하고 싶어지는, 도저히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리멸렬한 감각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의 동요를 얼버무리듯이 말했다.

「저도 당신과 같아요. 당신과 만난 것을 너무나 기쁘게 생각합니다, 로젠슈타인 백작」

천천히 고개를 숙이면서, 이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이라면 서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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